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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유래 · 명소


~1900년대

  • 고려시대 견주(일명 풍덕)에 속함
  • 1912. 05. 23. 양주군 금촌면이라 칭함
  • 1914. 04. 01. 미음면, 금촌면 10개리를 통합하여 미금면이라 칭함.
  • 1979. 07. 01. 미금면이 읍으로 승격(대통령령 제9409호)
  • 1980. 04. 01. 양주군에서 남양주군 미금읍으로 관할구역 변경(법률 제3169호)
  • 1989. 01. 01. 미금시 승격에 따라 호평동 4개리를 통합하여 호평동이라 칭함(4통 22반)
  • 1989. 07. 01. 6통 26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1995. 05. 01. 도농복합형 남양주시 설치(법률 제4774호)
  • 1997. 07. 30. 7통 39반으로 증설(통/반조정)

2000년대 ~ 현재

  • 2005. 05. 12. 23통 283반(통/반조정)
  • 2008. 02. 21. 24통 297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08. 10. 09. 25통 303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09. 08. 06. 26통 303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10. 03. 04. 28통 313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11. 01. 12. 29통 333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12. 11. 08. 30통 335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14. 04. 03. 31통 347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15. 06. 18. 32통 359반으로 증설(통/반조정)
  • 2016. 01. 04. 호평·평내 행정복지센터 개청

지역유래

우리 호평동의 옛 지명은 한문으로는 “板谷(널판지판, 골짜기곡)”, 우리말로는 “늘을” 이다.
현재 알려져 있는 “板谷”은 “널(널판)이 많이 나는 골짜기” 란 뜻을 단지 한자로 표기한 말로서, 이 지역에서 출생하신 어르신들은 지금도 호평동·평내동을 묶어 “늘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 중기 이후 호평동·평내동의 들과 산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하였고, 이 나무들을 벌목하여 “널을 켜는 골짜기”란 뜻으로 “늘을”이라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 후 행정구역 통·폐합시 현재의 호평1통, 4통, 7통 지역을 이르는 ‘호만리’의 “호”자와, 호평2통, 6통, 16통, 23통 지역을 이르는 ‘평동리’의 “평”자를 따서 “호평”이란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우리 호평동은 “호만, 지사, 평촌, 구멍터” 등 4개의 마을명을 가진 자연마을이었다.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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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담당 부서

웹페이지
호평동
연락처
031-590-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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