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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지금의 남양주시는 본래 1980년 양주(楊州)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의 진접·진건지역은 고구려 시대에 ‘골의노(骨衣奴)’라고 불렸다. 이 지명은 통일신라 시대가 되면 황양(荒壤)으로 바뀌었으며, 이것이 고려 시대에는 풍양(豊壤)으로 다시 바뀐다. 이렇게 현재의 남양주시 진접·진건지역은 양주와는 별도의 지명이 있었다.

양주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고려 시대인 936년(태조 19)으로, “후백제왕 견훤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처음이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양주라는 명칭이 지방 행정구역 이름으로 꾸준히 이어온다.

그러나 당시의 양주라는 명칭은 지금의 남양주시 영역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양주라는 명칭과 영역이 명실공히 일치하는 시기는 1410년(태종 10) 양주목으로 승격되고부터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지금의 진접·진건지역은 풍양현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지니면서 양주목의 속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후 풍양이란 명칭은 영·정조대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풍양현 지역이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접동, 진벌, 건천, 진관 등의 면지명으로 표기되는 것으로 보아 풍양현 자체는 이즈음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되면 지금의 남양주지역도 양주의 한 부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1980년 4월 1일 법률 제3169호에 의하여 구리읍(7개 리), 미금읍(10개 리), 별내면(6개 리), 진접면(8개 리), 진건면(9개 리), 수동면(7개 리), 화도면(10개 리), 와부면(11개 리)의 2읍·6면·68리를 갈라 남양주군이 새로 설치되면서 남양주시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1980년 12월 1일에는 대통령령 제10050호에 의하여 와부면을 읍으로 승격하여 3읍·5면이 되고, 1986년 1월 1일에는 구리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86년에는 조안면이 새로 생기고 1989년 1월 1일 미금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같은 해 진접면이 읍으로 승격하고 퇴계원 출장소가 퇴계원면으로 승격하였으며, 1991년에는 화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995년 1월 1일 미금시와 남양주군을 통합하여 남양주시가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2001년 9월 남양주시 조례 제454호에 의해 진건면과 오남면이 각각 진건읍과 오남읍으로 승격하였고 2001년 12월 남양주시 조례 제1006호에 의해 별내면 덕송리, 화접리를 통합하여 별내동을 신설하였으며 2017년 12월 남양주시 조례 제1487호에 따라 도농동과 지금동의 명칭을 각각 다산1동과 다산2동으로 변경하였다.

2019년 10월 남양주시 조례 제1676호에 따라 퇴계원면이 퇴계원읍으로 승격하여 현재 남양주시는 와부읍·진접읍·화도읍·진건읍·오남읍·퇴계원읍의 6개 읍, 별내면·수동면·조안면의 3개 면 그리고 호평동·평내동·금곡동·양정동·다산1동·다산2동·별내동의 7개 동을 관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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