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양주가 고려 지방통치체제 내에서 정식으로 등장한 것은 983년(성종 2)이다. 성종은 처음으로 지방에 12목을 설치하였는데, 이 때의 12목은 양주(楊州)·광주(廣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 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해주(海州)·황주(黃州)이다. 이로써 양주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지방행정구역으로 승격하였다.

양주목의 규모는 지방통치의 최고 행정기관으로 문종대의 남경유수관에 설치된 주·부·군·현의 숫자인 31개의 지방 행정조직과 그 규모가 유사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 때의 범위는 『고려사』 지리지 남경유수관조에 의하면 교하군(交河郡 : 파주), 견주, 포주(抱州 : 포천), 행주, 봉성현(峰城縣 : 파주), 고봉현(高峰縣 : 고양), 심악현(深嶽縣 : 파주), 풍양현(豊壤縣 : 남양주시 진접·진건), 사천현(沙川縣 : 양주)의 3군 6현이었으며, 관할지는 1부 2군 1현이 있었다.

양주목에서 절도사로, 절도사에서 지주사로 강등되었던 양주는 1067년(문종 21)에 남경으로 다시 승격된다.
남경은 서경(평양)·동경(경주)과 더불어 3경 체제를 이루어 지방제도상 최고의 지위이며 지금의 남양주시를 포함하여 양주·포천·의정부·수원·인천·시흥·평택·화성·파주·고양·김포·강화·안성·안양 등 경기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넓은 지역이었다. 이후 남경은 고려 지방행정의 근간으로 200여 년간 존속하다가. 고려 말 1308년(충렬왕 34)에 한양부로 격하되었다.

한양부로 바뀐 양주는 3속군·6속현을 지배하는 하급 관청으로 지금의 서울·남양주·양주·포천·고양 등 서울과 그 주변 일대만을 다스리게 되었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을 배제하는 강력한 반원개혁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옛 제도로 돌아가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정치에 힘입어 한양부는 남경으로 환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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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자 : 2013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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