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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자료실

  • 다산 정약용 선생과 관련 있는 자료를 모아 놓았습니다.
  • 부족하나마 다산선생에 관련된 자료를 찾는 여러분에게 작게나마 도움이되시길 바랍니다.
제목 정약용과 다산문화재
담당부서
등록일 2007/11/27 조회수 7521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로서 1762년(영조 38) 현재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정약용은 어려서부터 이익의 학문을 접하였고, 이벽에게 서양서적을 얻어 읽기도 하여 실학과 서학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정약용은 관직에 오른 뒤 거중기와 녹로(도르래)를 만들어 수원성을 쌓는 등 여러 업적을 남겼지만, 주문모신부의 변복잠입사건으로 형 정약전과 함께 충청도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와 황사영백서사건으로 경상도 장기를 거쳐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생활에 들어가며 조선사회의 현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여러 사상과 학문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하였다. 1818년(순조 18)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마현마을 고향집으로 돌아와 저술생활로 평생을 보냈으며 1836년(헌종 2) 75세로 생을 마쳤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의 유배기간 동안 실학의 대가가 되어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 ≪경세유표(經世遺表)≫ 49권, ≪흠흠신서(欽欽新書)≫ 30권 등을 쓰면서 정치 경제 등 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고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다.

능내리의 다산 유적지에 있는 정약용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7호)는 발치 아래를 감싸고 돌아 흐르는 두물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 아트마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묘 앞에는 비서과 상성, 그리고 좌우에 망주석이 배열되어 있다. 봉분은 단분이며 숙부인 풍산 홍씨와의 합장묘이다.

문화관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으며 다산 관련 강연회와 학술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또한 다산문화제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사계절 내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찾아가는 길





수종사는 남양주시 조안면의 운길산 정상 아래에 있다. 운길산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그윽함이 감도는 명산으로, 이 산자락에 자리한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빼어나다. 수종사 법당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줄기가 하나로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의 그림같은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로부터 수종사는 서거정, 이명한, 김병연, 정약용 등 수많은 문인들이 그 아름다운 풍광을 노래했던 명소이다.
옛말에 의하면 세조가 만년에 병을 치료하고자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올 때, 뱃길로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도중에 밤이 되었으므로 이곳 양수리에서 물 위의 야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홀연히 운길산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오자 다음날 사람을 보내 숲속을 조사해보니 천년 고찰의 폐허가 있었고, 바위 벽에는 18나한상이 줄지어 앉아 있는데 그 바위틈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들은 세조는 매우 감동하여 지금의 이 자리에 절을 복원하게 하고 절이름을 '수종사'라 하도록 했다고 전한다.

현재의 절은 대부분 1974년부터 중건된 것들인데 대웅보전과 나한전 산신각 약사전 응진전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현재 절이 있는 마당과 그 아래쪽 절터에 옛 기와조각들이 많이 보이고 있어 과거엔 절의 규모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조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7호)와 팔각오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이 있다.

한편 수종사 대웅보전 동편의 불이문 앞에는 500여 년이나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수종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데, 이 나무들은 세조가 절의 중창을 마친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양절공 한확(1403∼1456)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이며, 그의 누이가 명나라 성조의 후궁이 되어 명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냈는데 여러 차례 모국과 왕래하면서 두 나라 사이를 원활히 하였다. 계유정난 때는 수양대군 쪽에 가담하였으며 1456년(세조 2) 사은사로 연경에 들어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단종이 양위한 것으로 명나라를 설득시켰다. 그 공을 인정받아 정난공신 1등으로 서성부원군에 봉해지고 우의정에 올랐으며 연이어 좌익공신 1등으로 좌의정에 오르고 서원부원군에 개봉되었다.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다가 귀국하는 길에 사하포에서 숨졌으며 세조묘(종묘에 안치된 세조의 위패)에 같이 배향되었다. 그의 둘째 딸은 예종의 왕후가 되었다.
묘는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으며, 묘비와 장명등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묘소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하기가 어려운데 비는 한확선생이 타계한 지 39년 후인 1495년(연산군 1)에 조성되었다.









와부읍 팔당리 팔당분교를 개조하여 활용하고 있는 향토사료관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금석문 테마박물관이다. 금석문의 보고인 남양주지역의 특성을 살려 이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은 소중한 금석문 자료를 빠짐없이 탁본하고 사진촬영하여 보관 전시하고 있는 향토사료관은 지난 1998년 12월 19일 조안면 시우리 송촌초등학교 시우분교에서 문을 열었고, 2000년 9월 27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 개관하였다. 현재 70여 점의 탁본자료와 귀중한 유물사진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데, 매주 수요일에는 초중고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금석문 탁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남양주시의 문화유적지와 관광코스를 답사하는 생생한 현장학습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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