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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

대흥사 대웅전

해남의 대흥사는 해남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두류산 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사찰이 다. 원래 이름이 대둔사였는데 한동안 대흥사로 바꿔 부르다 최근에 다시 대둔사로 바 꿔 현지 사람들에게는 대흥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다.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명사찰이 다. 경내에는 추사 김정희이 필치로 새겨진 현판,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는 표충 사, 다성(茶聖)이라 일컫는 초의선사 동상, 성보박물관 등 사찰의 내력을 알려주는 유 적들이 즐비하다. 대흥사는 주변의 수려한 풍광과 산세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던 서산대사로 유명하다.

그러나 대흥사 하면 일지암(一枝庵)과 다도문화를 부흥시켜 차 문화의 성인이라 일컫는 다성 초의스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불교에 귀의한 스님 이면서도 초의는 당대 유가의 명사, 시인들과 폭넓은 교분을 가졌는데 다산과의 인연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대둔사는 12대강사로 백련사에 있으면서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 던 다산과 가깝게 지냈던 혜장에 의해 만난 두사람은 속세의 나이를 뛰어넘어 깊게 사 귀게 된다. 이 때(1809년) 다산은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어 있었으며 초의는 24살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대흥사 마애여래좌상

혜장과 사귀면서 본격적인 차생활을 시작하였던 다산은 초의에게서 차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초의는 다산에게서 주역과 시문을 배웠다. <동다기>와 <다신전>을 지어 후인 들에게서 조선 차의 중흥조로 불리는 초의는 유학자인 다산과 속세와 산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교분을 쌓는데 이 인연은 다산의 두 아들인 학연과 학유에게까지 이어진다. 다음은 여름 날 장마비에 갇혀 초당의 다산을 만나러 가지 못하는 초의의 안타까움이 배어있는 時 (阻雨未往茶山草堂)의 일부이다. 장마비가 괴롭게 서로를 막으니 채비를 갖추고도 스무날을 보냈다 어른의 분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 어디에도 내 진심 하 소연할 곳 없구나. 대흥사에서 두륜봉 쪽으로 걸어서 40여분 걸리는 산중턱에 일지암(一枝庵)이 있다. 이 곳은 초의선사가 39세인 1824년에 지어 40여년간 기거한 한국 차문화 중흥의 상징인 곳이다.

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담당자
 : 우진헌
문의
 : 590-2837

[수정일자 : 2011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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