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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정약용의 삶

  • 출생
  • 성장기
  • 관직시절
  • 유배시절
  • 만년시절

다산정약용 유배지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다산은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노론과 남인사이의 당쟁이 1801년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다산은 포항 장기로 셋째형 약종은 옥사하고 둘째형 약전은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9개월이 지난 후 황사영 백서사건이 발생하자 다산은 서울로 불려와 조사를 받고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 지를 옮겼다. 강진에서의 유배기간은 다산에게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이 시기에 다산학의 두축을 이루는 경세학과 경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500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이루어졌다.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모아 교육하였으며, 제자들 또한 저술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유배지의 제자들로는 이청 · 황상 · 이강회 · 이기로 · 정수칠 · 윤종문 등을 들 수 있다.

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담당자
 : 우진헌
문의
 : 590-2837

[수정일자 : 2012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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