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 > 다산소개 > 다산정약용의 삶

다산정약용의 삶

  • 출생
  • 성장기
  • 관직시절
  • 유배시절
  • 만년시절

다산정약용 저서

다산은 23세 때 (1783년)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시험을 통해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았다.

28세때 (1789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였으며, 첫 벼슬인 희릉직장 을 비롯하여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거쳤다. 이즈음 “성설”과 “기중도설”을 지어 수원성을 쌓는데 유형거와 거중기를 만들어 사용할 것을 건의하여 많은 경비 를 절약하였다.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서는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였으며, 연천 현감 김양직과 상양 군수 강명길의 폭정을 고발하여 처벌하였 다. 이를 통해 관리의 책임과 의무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23세때 甲辰年(1784년) 4월 큰 형수의 제사를 마치고 서울로 오던 두미협(斗尾峽) 의 배 위에서 다산과 사돈 관계에 있던 광암(曠菴) 이벽(李檗, 1754~1786)으로 부터 처음 천주교를 접하였다. 이후 한때 천주교 서적을 읽고 심취하기도 하였으나 성균관에서 학업에 정진하느라 곧 손을 떼었다. 다산은 천주교 신앙과 서양과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기도 하였으나 갖은 시련과 좌절을 맞보기도 하였다.

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담당자
 : 고현수
문의
 : 590-2064

[수정일자 : 2014년 8월 25일]

만족도평가
만족도평가
 :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 만족도 조사결과는 서비스개선을 위한 자료로 활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