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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정약용의 삶

  • 출생
  • 성장기
  • 관직시절
  • 유배시절
  • 만년시절

다산정약용 생가

10세부터 과예(課藝)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아버지가 잠시 벼슬을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 경전(經典)과 사서(史書) · 고문(古文)을 부지런히 읽었으며 시율(詩律)을 잘 짓는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다산은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제법 문자를 알았다”고 회고 하였으며 그가 7세 때 지은 “산” 이라는 시가 이를 입증하여 준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이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또 다산이 10세 이전에 지은 시문을 모은 「삼미자집(三眉子集)」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1777년 다산은 자신의 학문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을 만 나게 되었으니 그가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이다. 다산이 두 살 되던 해에 성호가 세상을 떠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다산은 성호의 글을 접하고 학문을 굳히게 되었다.

다산은 이 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이 때 서울에는 이가환(李家煥) 공이 문학으로서 일세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자형인 이승훈(李承薰)도 또한 몸을 가다듬고 학문에 힘쓰고 있었는데 모두가 성호 (星湖) 이익(李瀷)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아 펼쳐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약용도 성호 선생이 남기신 글들을 얻어 보게 되자 흔연히 학문을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것은 지방수재에 불과한 그에게 세상과 학문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계기 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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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자 : 2014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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