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천뢰(尹天賚: 1617~1695)는 조선 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대여(代餘)이다. 의주부윤(義州府尹) 윤진경(尹進卿)의 아들이다.
1643년(인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며, 1654년 치마별장(治馬別將)으로서 군사를 사열할 때 부하들이 왕 앞에서 금위영 군사와 다툰 일로 책임을 지고 투옥되었다. 그 뒤 정상이 참작되어 용서되고, 1657년(효종 8) 충청도 병마절도사에 오르게 되었다.
1662년(현종 3) 어영종군을 역임하였고, 다음 해에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거쳐, 1669년에 다시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외방에 머무르면서 지방의 군무를 담당하였다. 그 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도총관·훈련대자 등을 역임하고, 1679년(숙종 5)에 중군이 되었다. 이듬해 외직으로 나아가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군무에 충실하였다.
한편 1680년(숙종 6)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재직할 때에 대흥산성(大興山城)을 증축하고, 도정(都正)으로 재임시에는 강화도의 돈대(墩臺) 공사를 총감독한 공으로 그 노고가 인정되어 포상을 받았다.
묘역은 별내면 화접리에 있으며 봉분(封墳)은 단분(單墳)으로 정부인(貞夫人) 초계정씨(草溪鄭氏)와의 합장묘이다. 원형호석을 둘렀으며 호석 전면의 중앙에는 ‘乙’ 자를 새기고, 후면 중앙에는 ‘辛’ 자를 새겨 이 묘역이 신좌을향(辛坐乙向)의 좌향을 가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묘역에서 동남쪽으로 약 300m 아래에 신도비가 위치하고 있으며 1699년(숙종 25)에 세운 것이다. 비문은 대국보국종록대부 영중추부사 남구만(南九萬)이 찬하고, 경기도 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 조상우(趙相愚)가 글씨를 썼으며, 통정대부 승정원우승지 홍수주(洪受疇)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