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문신인 남선(南銑: 1582~1654)의 묘이다. 호는 회곡(晦谷), 대몽(大夢), 본관은 의령(宜寧), 무주현감(茂朱縣監) 복시(復始)의 아들로 어머니는 좌의정 김명원(金命元)의 딸이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
1606년(선조39)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난정(亂政)으로 과거를 단념하고 용인에서 살았다. 인조반정 후 태릉 참봉이 되었다가 호조좌랑, 사복시판관을 거쳐 고산현감을 지냈으며 1629년(인조7)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헌부지평을 거쳐 이듬해 안악군수가 되었다.
이 후 해주목사,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함경도병마절도사, 전라도, 강원도관찰사 등 여러 번 지방 관직을 지내면서 일을 바르게 처리하고 선정을 베풀어 부임하는 곳마다 송덕비가 세워졌다.
묘역은 청학리에 정부인 팔창도씨(八菖都氏)와 합장묘로 북동향하고 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 상석과 장대석, 향로석 문인석을 놓았으며, 월두형 묘표가 있다.
신도비는 대제학 김육(金堉)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원래 것은 한국전쟁때 파손되어 방치되고 있으며 현재의 것은 1990년 새로 건립하여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