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CEO 이석우 > 공감스토리 > 인생공감

인생공감

  • 유년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석우 시장의 인생 스토리를 전하는 공간입니다.

01 유년기

아들은 청개구리(개구쟁이 석우)
어렸을 적 어머님께서는 “석우는 청개구리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마도 말썽을 많이 부리는 개구쟁이로 속을 많이 썩여 그러셨던가 봅니다. 그래도 공부하라 다그치시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굳이 말리시지는 않으셨습니다.(오히려 어른이 되면 삶의 자양분이 되신다며…)
유난히 친구들과 잘 어울려 다니며 놀던 그 때가 아련히 떠오르네요. 잘못하면 회초리를 드신 후 이내 자식의 붉어진 종아리를 매만져 주셨던 어머니의 얼굴과 함께...........,

02 학창시절

세상을 꿈꾸며(생도 이석우)
서울의 양정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관학교에 들어갈 60년대 후반에는 6.25전란이 멎은 지 얼마 안돼 너나없이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가정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한 것은 저희 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손위 형이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복의 세계도 동경하게 되었고 때마침 아버지의 권유도 있어 푸른 바다에 꿈과 희망의 나래를 펴게 되었습니다. 사관학교 가족이 되었던 것이지요.
사관학교를 졸업할 즈음 해군과 해병을 선택해야 할 때 아버지께서는 해군을 권유하셨지만 제 삶의 성장 가능성을 더욱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 해병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모험심과 도전정신은 타고났나 봅니다.
사관학교와 해병의 생활은 저의 인생에 많은 가르침을 주었고, 걸어온 이 길이 언제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03 군대

잊지 못할 군 생활(해병 이석우)
해병 소위로 임관하여 포항 제1상륙사단에 배치된 후 소대장, 중대장, 작전장교 등을 거치면서 군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골목대장 노릇을 하던 어렸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른)
군 생활을 하면서 조직의 운영과 함께 과업의 완수는 부하에 대한 관심과 자애, 그리고 솔선수범을 통해 성사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를 몸소 깨닫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1974년도에는 청와대 전 박정희 대통령 경호단 요원에 선발되었습니다.
1년간의 교육훈련을 받고 대통령 경호관으로서 4년 동안의 근무기간은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저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간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곤 합니다.

04 결혼생활

사랑(아내와의 만남)
동료들이 “석우는 영락없는 군인 스타일이야”라는 농담을 들을 만큼 군 생활에 열중하고 있던 저에게는 이성과의 만남은 어쩐지 남의 이야기만 같았습니다. 평소, 어머님께서는 “며느리는 권력이나 돈이 많은 가정의 자식보다는 그 사람 됨됨이 자체를 볼 것이다”라고 하신 그 말씀에 딱 맞는 조용하고 상냥하며, 가정교육도 잘 받은 아담하고 예쁜 여성과 맞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군 생활의 특성상 저를 대신해 두 아이를 키우면서 고생한 아내, 그 때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 생활을 마치고 난 후부터 특별한 일이 없을 때에는 늘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 애써왔고, 엄한 아버지보다는 따뜻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지만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았음에도 지금까지 저를 믿고 사랑해 준 가족에게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05 사회생활

번민, 그리고 새 희망(무관의 길에서 문관의 길로)
해병 소령의 신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호관으로 청와대 파견 근무 하던 1979년도에 10․26 사건이라는 역사의 큰 회오리를 맞게 되었습니다. 해병대 사령관이라는 제 인생의 꿈을 접어야만 했던 그때의 가슴 아픈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군인의 길만을 생각했고 그 것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무부 연수원 공무원 교관을 시작으로 행정 공무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아내의 내조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고통과 번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내의 사랑은 제 인생 곳곳에서 안식과 희망의 화수분이었습니다.
행정 CEO로의 출발을 위한 디딤돌
내무부 연수원 공무원 교관으로 행정공무원을 시작하여 경기도 내 11개 지방자치단체의 부시장과 경기도 본청에서 3개의 국장, 그리고 행정2부지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자치행정가로서의 역량을 쌓아 왔습니다.
군 지휘관으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는 공직생활의 밑거름이 되었고, 저만의 모험심과 탐구정신은 다른 공직자들과는 조금은 다른 색깔의 행정마인드를 갖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젊은 시절 꿈꾸었던 사령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행정가로서의 사령관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고, 희망과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명품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의욕과 모험심은 다시 저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미금시 부시장과 통합 후 남양주시 부시장으로 재직하여 남다른 애정과 관심이 많았고 저의 뿌리이기도 한(본적 : 남양주시의 모태인 양주시 은현면) 남양주시, 이 곳이 저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킬 터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열악하지만 자연 환경이 수려하고 발전 가능성이 많은 남양주를 경기도 동북부의 중심 도시, 희망이 살아 숨쉬는 도시, 시민들이 편안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친환경 휴먼시티로 건설하겠다는 저의 새로운 도전은 2006년 7월 3일 민선4기 남양주시장으로 취임하던 순간부터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06 남양주시장

제3의 인생(행정 CEO)
남양주시장으로 취임하면서 저는 우리시를 명품도시로 만들어가겠다는 큰 틀의 시정 목표를 설정하고, 1년마다 시정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동적인 구호를 제시하여 하나씩 과업을 수행해 나가고자 했습니다.
2006년도에는 ‘통쾌 유쾌 명쾌한 명품도시’를, 2007년도에는 ‘선택과 집중’을, 2008년에는 ‘창조적인 사고 스피드한 행정’을, 2009년에는 2008년의 시정목표를 보다 강도 높게 실현시키고 추가적으로 ‘시민참여 행정’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도에는 ‘상상의 실현 그 이상의 도전’이라는 구호 아래 지금까지 구상했던 것들을 종합적으로 실현시키고 다시 또 다른 꿈을 이루어 나가는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여 왔습니다.
민선 4기를 마무리하는 2010년도에는 제 인생 목표의 한 장을 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힘들었지만 열심히 노력했고 작은 성과와 보람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 마무리하지 못했던 것들을 완성하고, 보다 새로운 미래로 한 발짝 더 나가기 위한 설계를 위해 공직자와 시민들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데 주력하고자 합니다.